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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vious (20-22)/Politics

우리나라의 진보와 보수란

요즘 진중권 전 교수가 진보진영과 현 정권에 거침없는 비판을 쏟아내서 화제가 되고 있죠.

그래서 그를 응원하는 사람도, 비판하는 사람도 많은 것이 현실인데.

여기서 그를 평가하기 앞서서 과연 우리나라의 진보와 보수라는 것에 대해서 한번 짚어보는 글을 써볼게요.

 

사실 진보, 보수, 좌파, 우파 등등 이런 표현이나 진영 자체가 나쁘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군사정권이나 유신정권의 잔재라고 볼 수도 없고, 해외에서도 진보, 보수 진영이라는 것이 버젓이 존재합니다.

즉 진영 어디 하나를 나눈다고 해서 구시대적 사고방식이라고 판단하기도 어렵겠죠.

 

다만 이데올로기가 무너진 것 하나는 확실한 것이,

구소련은 이미 수십년 전에 무너졌고, 중국은 1당 독재체제지만 사실상 자본주의와 같은 형태입니다.

북한의 기형적 제왕적 사회주의 체제가 유지되고 있기는 하지만 순수한 공산주의는 결국 실패한 사상이 되었고 그로 인해서 이데올로기의 구분 자체는 큰 의미가 없어지게 된 것이죠.

 

우리는 뭔가 새로운 것을 추진해 나가는 것을 진보라고 하고,

옛 것을 유지하면서도 점진적인 발전을 추구하는 것을 보수라고들 합니다.

나라마다 문화적 시대적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그 기준을 다른 나라와 동일선상에 놓고 볼 수는 없지만,

큰 틀에서는 그 정도로 정의가 가능하다고 볼 수 있겠죠.

 

현 정권은 나름의 진보 성향의 정권이라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독립 이후로 유신정권, 군사정권, 기득권을 누려왔던 사람들은 큰 변화보다는 현실에의 안주 또는 점진적 변화를 꾀하는 반면, 거기에 맞서서 대항했던 사람들은 끊임없는 변화를 위해서 노력했기 때문이랄까요. 아마도 그런 점에서 진보와 보수 성향이라는 것이 나누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런데 6.25 이후로 유신정권 때 북한=공산당=빨갱이=주적이라는 공식을 더욱 강조하면서 결국 그들을 배척하는 것이 보수이고, 그들과 친화적으로 지내는 것을 진보라는 형태로 프레임이 형성이 되어가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사실 진보, 보수가 뭔지도 잘 모르면서 북한 친화적인 진영은 진보진영, 북한을 배척하는 진영은 보수진영이라는 형태로 자리잡기도 했습니다. 그것이 우리나라가 가지는 진보/보수 프레임의 독특한 형태라 볼 수 있죠.

 

그것은 아마도 우리나라가 분단국가이고. 분단국가라는 아주 큰 틀을 그냥 유지나 하자 혹은 분단국가라는 틀을 조금이라도 깨려고 노력해보자라는 성향의 차이가 있다 보니, 북한에 대한 성향을 가지고 진보/보수가 나누어지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의 진보/보수 구분은 결국 북한을 기준으로 하고, 기득권에 대한 대항 여부로 구분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위에 쓴 대로 나라마다 진보/보수를 나누는 기준이 다르고 거기에 맞기 때문이랄까요. 그래서 저 또한 이 부분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출처: 사진에 나온 그대로

 

그런 면에서 이번에 진중권 전 교수의 진보진영에 대한 비판은, 그것이 잘못되었다기 보다는 어떻게 놓고 보면 새롭다라는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이 맞지 싶습니다. 물론 전 그 사람의 지지자도 아니고 아무 관련도 없는 사람이지만, 아무튼 그렇습니다. 왜 그렇게 봐야 하는지 한 번 볼까요.

 

우리나라의 총선, 대선 프레임은 항상 일관성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소위 "그들"이 말하는 보수진영과 진보진영의 싸움이다. 그러므로 진보가 뭉쳐야 하고, 보수도 뭉쳐야 한다.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반대를 위한 반대"는 사실 제가 싫어하는 성향입니다. 그러나 과거부터 현재까지 돌이켜본다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정권을 쟁취할 수 없는 그런 상황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다 라는 결과가 도출되기도 했고요.

 

그런데 현 정부와 주변 상황을 돌이켜봅시다. 

 

보수 진영에서는 자꾸 통합 논의가 있죠? 뭉치지 않으면 큰일난다. 망한다 그러고 있죠?

그거는 맨날 뉴스로들 접해서 잘 아실거에요.

 

반대로 봅시다.

진보 진영에서 통합 논의가 있나요? 뭉치지 않으면 큰일나나요? 망하나요?

그런 이야기 하나도 없습니다. 조금이라도 있는게 아니라 아예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굳이 뭉치지 않아도 큰일나지도 않고 망하지도 않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가 당연히 안나오는겁니다.

박지원을 중심으로 대안신당이 거론되고 있기는 한데, 사실 그 분류는 진보진영을 대표하는 정당과 세력이 전혀 아닙니다. 그리고 보수진영이 뭉치기 때문에 거기에 맞서서 통합하려는 정당조차도 전혀 아닌 셈이죠.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박근혜 탄핵 이후로 사실상 우리나라에서 보수 성향의 세력들은 아직도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고, 뭉치려고 하고 있기도 하지만, 예전처럼 그렇게 힘을 쓸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긍정적인 상황이죠. 유신정권-군사정권의 잔재들이 나라를 그동안 말아먹고 다녔었지만, 이제는 더이상 그들이 원하는대로만 나라가 좌지우지되지는 않는다라는 것.

 

그런 면에서 진중권의 비판은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비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만에 하나, 예전처럼 보수-진보가 뭉치지 않으면 큰일난다는 그런 상황이였다면 어땠을까요. 현 정권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보수진영이 다시 기득권을 유지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힘을 실어주겠지만, 그럴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현 정권에 힘을 실어주기보다는 잘못된 점을 비판한다라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진중권 입장에서 현재의 "보수"라고 불리는 세력은 아예 신경조차 안 쓰고 있다는 뜻이죠.

 

 

이러한 비판 자체는 자연스럽습니다.

왜냐 하면, 고인 물을 썩기 때문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민주당 정권이 나왔지만, 민주당 사람들도 옛날부터 기득권 수구정당에 맞섰던 사람들이 주를 이루고 있고, 이제는 그들이 정권을 같이 창출하고 있습니다. 자유당 사람들만큼 꽉 막힌 사람들은 아니지만, 민주당 정권의 상당수도 어떻게 보면 옛날 사람에 가깝다는 뜻이죠.

 

민주당이나 정의당 의원들이 진보적 성향이라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진보적 성향이라고 하더라도 그들 역시 긴 역사의 흐름에서 기득권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는 있고, 보수 진영 자체가 점점 존재감이 옅어지는 그런 흐름이라면 이제는 현 정권 자체가 새로운 기득권이 되고 새로운 보수적 성향을 띤 정권 자체가 될 수가 있습니다.

 

민주당 의원들이나 사람들이 잘못됐다는 것이 아닙니다. 정권이라는 것을 창출하고 새로운 기득권이라는 것을 얻으면 그 속에서 사람들이 고이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일 뿐입니다.

 

이번 조국 사태때 조국을 수호해야 한다 시위가 많이 있었습니다. 최근에도 있었을텐데요. 진중권은 이걸 두고 엄청난 비판을 했었죠. 아마도 그의 눈에서 조국 또한 기득권을 누린 사람 중 한 명이 되었고, 그를 옹호하는 것은 잘못되었다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진짜 진영 논리가 아닌, 그저 잘못된 것을 비판했을 뿐이고. 또한 그것을 같은 진영이라고 해서 보호해야 한다라는 것을 더더욱 비판한다고 생각하는 것이고요.

 

여기에서 유시민 등과 진중권이 크게 갈리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유시민 - 그래도 같은 진영이니까 잘못을 굳이 찾아내려는 것 보다는 보호를 해 주는 것이 정권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

진중권 - 아무리 같은 진영이라도 잘못은 비판하는 것이 마땅하고, 여기서 감싸주기만 하면 현 정권 또한 이전 보수 진영들 처럼 기득권만 누리고 적폐로 가득찬 정권이 될 것이다.

 

그러면 보수 진영에서는 왜 진중권을 지지하냐. 그거는 더 간단하죠.

유시민과 같은 논리는 보수진영의 궤멸을 위해서 아직까지는 덮어주는 것을 원하는 반면, 진중권과 같은 논리는 보수진영의 궤멸도 중요하지만 우리쪽에서 잘못된것부터 철저하게 고쳐나가자인데, 보수진영 입장에서는 전자 말고 후자쪽을 지지해줘야 자기네들이 조금이라도 더 살아남을 수 있거든요.

 

과연 어떤 것이 옳을까요?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진중권 전 교수가 쏟아내는 비판이 단순히 왜 현 정권을 뭐라고 하냐에 대한 그런 비판으로 보기보다는, 더욱 나은 정치적 발전을 위한 하나의 관점으로 보는 것이 맞지 싶습니다. 

 

진영 논리의 양극화 시대가 끝났다면, 같은 진영이라도 이제는 더이상 물이 고이지 않도록 내부에서 잘못된 것 또한 고쳐나가는 것이 필요한 법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