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Inventory

내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지 마라.

스타트업 CTO 합의.

사실 그것은 내 꿈과 목표를 이루기 위한 발판이였지만,
현재로부터 회피하고자 하는 마음이 더 강했다.
어떻게 보면 이성적이지 못했을지도.

재무제표도 비공개였지만, 오늘 들은 바로는
지극히 미미한 수준.
통상적인 스타트업의 수준이 아닌,
자본금만으로 운영하다가 이제 막 IR을 받은 곳.
투자 예정만 있었고 투자 확정은 없었던 곳.
첫 정규직인데도 세 달 급여를 80%로 주기로.

어제는 그래도 좋다고 네네 그렇게 할게요 했지만
가장 먼저 이야기한 사람은 다름아닌 아내.
늘 그렇듯이 반대하겠거니 하고 진짜로 반대했고.
그 과정에서 서로간의 깊은 대화를 나누고
내 이성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 요구했다.
내용은 많지만 핵심 키워드는 이정도.

재무제표 까세요
지금까지 투자예정 말고 이미 받은 곳 말하세요
정규직 첫 세달 급여는 100%로 해주세요

그거 아니면 나 안간다.

CTO로 뽑는다며. 그럼 임원이잖아.
근데 80%로 시작하자고?
나는 그렇다 쳐도 앞으로 사람 더뽑는다며?
내가 임원이라면 직원들 그런 식으로 절대 안뽑는다.
유능한 인재를 뽑으려면 그렇게 하면 절대 안되지.
사람이 중요한데 사람에 돈을 아끼면
성공을 못하는데 그게 말이됨?

부양할 가족이 있고 먹고살기 어려운게 문제가 아니다.
내가 경영진이라면, 절대 그렇게 운영 안한다는 의지다.

그래서 다른것 다 오케이하고
그것 딱 하나만 절대 양보 안한다고 했다.

그리고 나온 결과.
같이 갈 수 없겠다.

이미 예상했다.
아니 오히려 그래주길 바랬고, 그렇게 되었다.

이유는 뭐 뻔하지.
그쪽도 돈이 문제가 아니라
같이 회사를 이끌 사람인데 시작부터 이러면
같이 이끌기 힘들다는 계산이 선게 아닐까?
나 또한 그걸 유도한 것이 맞고.

맞다.
난 그동안 사람에게 싫은소리 잘 하기 싫어서
내가 을이여야 했고. 위축되어야 했고.
항상 지고 살고 그랬다.

하지만 이번 이직건 관련해서는
내가 더이상 을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자. 난 이만큼 요구할테니 어디 들어나 봐라.

드디어 속이 후련해졌다.
솔직히 떨어졌지만. 기쁜마음도 있다.
내가 내 주장을 내세워서 원하는 결과를 얻어낸거니까.
이런 기분을 얼마만에 느끼는건지 모르겠다.

현재로부터 회피하고자 하는건
사실 이성적이 아닌 감성적이지만
그 과정에서 내가 놓친 것이 있었으니까.
사실 사람이 뭐 놓치는거 많을 수도 있지 안그래?

그런데, 이번만큼은 대처를 깔끔하게 잘했던게.
다른 지원 기업을 취소하지 않고 유지시켰으며,
다른 사람도 아닌 반대가 심할것같은 아내한테 먼저 말했고. 그거는 순서가 바뀌었으면 진짜 나락으로 갈 수도 있었을 정도로 큰 건이다.
실제로, 와이프는 내가 놓쳤던 부분을 잡아준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고, 내가 옳은 의사판단을 하는데 도와줬으니.

그럼 지금회사는?
당연히 계속 다닐 생각은 없다.
하지만 지금은 그만둘 때는 아니다.
오히려. 이제 곧 끝나겠구나 라는 그런 생각을가지면서.
좋든 싫든 4년을 다녔는데.
있는동안은 그래도 잘 해주자라는 긍정적 마인드까지 탑재할 수 있었다.

그러면 새로 옮길 곳은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 진행중인 곳에 충실하고.
이번 주 자격증 시험보면 그 이후에 다시 달려야지.

사실
내 주변엔 이젠 아내만 있지 않다.
예전과는 달리. 새로운 삶을 준비하기 시작하면서
글로벌 부트캠프에서 활동도 하기 시작했고.
잘못될 수도 있을 것 같은 의사결정과정을
그들로부터 조언을 들을 환경도 갖춰졌다.

그래.
나도 이제는 든든한 뒷배가 있으니까.
지금 당장 뭐 없어도 자신감은 충만하다.

이번 CTO 이적 취소 건으로
난 많은 것을 얻었다.

내가 힘들 때 가장 먼저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을 돌이켜보고 믿을 수 있는 심리적 안정.
직장생활에 대한 나의 위치는 비록 안 좋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으로 나아가려는 태도.
내 꿈과 미래를 위한 자신감.
내 가치관과 소신을 바탕으로 필요할 때 적극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행동력.

한단계 나아가는 모습이 있었다는 것으로도
실보단 득이 많았던 듯.

이제 앞으로 남은 일은 뭐 간단하다.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큰 그림을 갖고
하나씩 나아가야 하지 않겠는가.